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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 칼럼

[2015.06.07] 불쌍하기 짝이없다 - 노승환 목사

관리자 조회1817 Jun 05, 2015

우리가 두 번도 생각지 않고 사용하는 말들의 어원들을 살펴보면 재미도 있고 새로운 깨달음들도 있습니다.
 
‘얼굴’은 ‘정신’ 혹은 ‘영혼’을 뜻하는 ‘얼’이 들고나는 ‘굴’이랍니다.
그래서 “나이가 40이면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한다”는 말도 있는 가 봅니다.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정신을 가지고 살았는가가 얼굴에 묻어난다는 거지요.

‘어리석다’는 말의 유래를 누구는 ‘어리다’, ‘어린아이-스럽다’에서 찾기도 하지만 또 누구는 ‘얼이 썩은’것을 의미한다고 주장합니다. 둘 다 일리가 있어 보입니다.

어느 소설을 읽다 ‘불쌍하다’는 말의 어원이 ‘不雙’ (아닐 부, 쌍 쌍)에서 나왔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많이 불쌍한 상태를 “불쌍하기가 ‘짝이 없다’”고 표현했다고 하네요. ‘불쌍하다’의 다른 표현이기도 한 ‘가엽다’는 말도 ‘가’는 ‘계집’, ‘가시내’ (그래서 가시어머니는 아내의 어머니를 뜻함)를 의미하기에 ‘아내’가 없는, ‘짝’이 없는 상태를 말한다고 합니다.
 
물론 다른 어떤 분들은 ‘不祥’ (아닐 부, 상서로울 상), 즉 좋지 못한 상태를 뜻하는 것이라고도 합니다만 ‘쌍’을 이루지 못하는 상태가 ‘불쌍한’ 것이라는 말이 어쩐지 저에게는 더 새롭게 와 닿았습니다. 아마도 성경구절 한 구절이 그 순간 떠올라서 그랬을 겁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창 2:18)” 짝을 이루지 못하고 혼자 사는 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좋지 아니한 것, 즉 ‘악한’ 것이 됩니다.

아직 시집 장가가지 못한 노처녀, 노총각들이 이 글을 읽으시면 상처가 되고도 남을 만한 말들을 제가 적고 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은 성령님과 ‘짝’하지 못하고, 하나님과 친밀한 ‘동행’없이 ‘솔로’같이 사는 그리스도인들의 ‘불쌍함’에 대해 말하고 싶어 이렇게 장황하게 말의 어원들에 대해 적은 겁니다.

주님께서는 저희에게 성령님을 ‘보혜사’로 보내주셨습니다. ‘보혜사’는 ‘돕는 배필’이란 말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이런 ‘돕는 배필’이 있음에도 간혹 우리는 ‘홀로서기’를 시도합니다. 그야말로 ‘불쌍’을 자초하는 ‘얼이 썩은’ 짓입니다.

절대적으로 선하시고 능하신 우리의 배필 되시는 성령님의 도움을 잘 받는 사람은 건강합니다. 그럴 때야 드디어 우리는 참 그리스도인다워질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또한 다른 사람들과도 잘 어울려 지냅니다. 반대로 다른 성도들과 좋은 교제를 잘 나누는 것이 성령 충만의 한 비결인 것도 사실입니다. 순모임, 각 선교회 모임 등에 적극 참여하는 노력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이렇게 성령님과 좋은 짝이 되고 다른 성도들과도 복된 짝을 이루는 상태를 성경에서는 ‘샬롬’이라 하는 겁니다.
‘샬롬’이 깨지면 참 불쌍한 겁니다.
그것 참 가엽고 불쌍하기가 짝이 없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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