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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 칼럼

[2015.12.13] 기다림의 절기 - 노승환 목사

관리자 조회1178 Dec 11, 2015

기다림은 무엇보다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하나님의 가장 본질적이며 중심된 성품은 물론 사랑입니다. 그 사랑의 성품에서 기다림의 성품이 파생되어 나온 것입니다. 사랑하면 기다려주니까요. 그것도 참 오랜 시간을요.
성경은 기다림을 오래 참음이라고 표현하기도 하고 또는 인내라고도 부릅니다.

베드로후서 3장 9절은 하나님의 기다리심에 대해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그분은 여러분을 위해 참고 있습니다. 그분께서 종말을 유보하고 계신 것은, 한 사람도 잃고 싶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이들에게 삶을 고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베풀고 계십니다.” (메시지 성경)

하나님께서는 집 나간 아들이 돌아오길 애타게 기다리는 탕자의 아버지의 심정으로 오늘도 기다리고 계십니다. 아들이 돌아오자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는” 그런 분이십니다.  (눅 15.20 개역개정).

하나님께서 기다리시는 하나님이시기에 성경은 기다림의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참으로 오랜 세월을 기다린 후에야 약속의 씨앗인 이삭을 얻었습니다. 아브라함이 기다리지 못하고 조급해 할 때 이스마엘을 낳게 된 것입니다. 야곱은 삼촌 라반의 집에서 7년을 일하고 또 다시 7년을 일하고 나서야 라헬을 아내로 맞이합니다. 요셉은 감옥에서 기약 없는 기다림을 훈련받습니다. 이스라엘은 출애굽 후 40년을 광야에서 기다림의 훈련을 하고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됩니다. 다윗은 사무엘에게 기름 부음을 받고도 15년을 기다리며 훈련을 받습니다. 그리고 나서야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습니다.    

기다림이 훈련되지 않고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에 대해 알아감에 있어 큰 부분을 놓치게 됩니다. 그래서 성경에 등장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은 기다릴 줄 아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기다림은 손 놓고 앉아 아무것도 하지 않는 수동적인 상태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귀한 손님이 오늘 저녁 우리 집을 방문한다 해도 집안 청소며 음식 준비로 분주 할 것입니다. 하물며 우리 사랑, 구세주께서 오심을 기다리고 준비함에 있어 멍하니 가만히 있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사랑의 성품으로서의 기다림은 적극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능동적이고 전존재적입니다.
 
저희는 지금 대강절 (Advent)을 지내고 있습니다. 성탄절 전 4주간을 대강절로 지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재림을 기다리며 준비하는 절기입니다. 그렇기에 대강절은 기다림의 절기라 할 수 있습니다. 이 대강절에 저와 사랑하는 밀알 가족 모두가 적극적이며 능동적인 기다림을 배우고 훈련하기를 소원합니다. 기다림이 우리의 거룩한 습관이요 삶의 특징으로 자리 잡게 될 때에 우리는 더 깊은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분이셨구나 하는 전에 알지 못했던 새로운 깨달음에 감격하며 그 앞에 무릎 꿇게 될 것입니다.   

훈련하여 우리 안에 형성될 기다림은 무엇보다 하나님의 성품이기에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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